박솔뫼

[빵집x도서관] 빵을 사주면

2024년 4월 17일

1월에 도쿄에서 한국에 올 때 트렁크는 미리 위탁수화물로 부치고 배낭과 옆으로 메는 가방을 들고 비행기를 탔다. 배낭에는 노트북과 안경 책 몇 권을 넣었고 옆으로 매는 가방에는 전날 얼려둔 빵을 들고 탔다. 비행기에 빵을 들고 타도 되나요? 비행기 빵으로 검색하면 아이가 밥을 못 먹어서 샌드위치를 챙겨가려는데… 이런 글이 보이고 당연히 된다는 답이 달려 있었다. 친구에게 빵을 얼려서 탈거라고 하니까 당연히 괜찮다고 자신은 늘 여행지에서 빵을 사서 기내 수화물로 가져갔다고 했다. 다들 빵을 소중히 여기는구나. 내가 가져간 빵은 롤빵 한 봉지와 식빵 두 덩어리와 팥빵 열 개쯤이었다. 옷을 사듯이 여기저기서 빵을 쇼핑해서 얼려두고 다음 날 정신없이 가방에 넣었다. 여권… 있고 지갑… 있고 빵은 찾지 않아도 허리에서 차가운 기운으로 거기에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한국에 도착해 짐을 찾고 공항에서 나와 점심을 먹고 근처 우체국에 가서 엄마에게 빵을 부쳤다. 엄마에게 달리 선물할 것이 없어서 미리 사둔 양산과 함께 빵을 보냈다. 겨울에 선물하는 양산과 얼린 빵들. 계절감이 없다.

아무튼 엄마는 소포를 받고 바로 아니… 빵이 정말 맛있더라… 롤 모양 빵에서는 막 좋은 밀 냄새 같은 게 확 나고 팥빵은 아주 달지도 않고 적당히 달고 정말 맛있더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신이 나서 내가 여기저기서 사냥하듯이 산 거야! 하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집에 갈 일이 생기면 팥빵을 사게 된다. 군산에 갔을 때는 이성당에서 팥빵을 사고 지나가다 맛있다는 팥빵을 보면 사 가고 광주에서는 광주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궁전제과에서 팥빵을 사 갔다. 엄마도 나도 팥빵을 좋아하는데 나는 팥빵을 좋아하는 것인지 팥을 좋아하는 것인지 팥이 들어간 찹쌀 도너츠와 찹쌀떡도 좋아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 글이 놓일 395빵집에는 팥빵 같은 것은 있지도 않을 텐데 그래도 팥빵도 빵이니 팥빵이라는 글자가 독일빵들 옆에 굴하지 않고 접히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서있기를 바랍니다. 혹은 독일빵을 먹으며 읽는 팥빵이라는 글자가 읽는 사람들에게 나름의 힘을 발휘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음 왠지 팥빵이 사고 싶네 하게 되어도 좋을 것 같다.

독일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베를린에서 3개월 머무는 동안 정류장 근처 작은 동네빵집에서 작고 둥근 빵을 사 먹던 것이 떠올랐다. eine…Kaffee 하고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손으로 둥근 빵을 가리키며 das…brot 하고 말했다. 하지만 종업원이 이거? 이거? 하면 이어지는 말은 설명할 수 없어서 그냥 ja라고 말하며 주어진 빵을 먹었다. 빵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빵을 사는 과정보다 인상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여러 번 입으로 뱉어봐서인지 아니면 기억하기 쉬운 단어라서인지 독일어로 빵이 brot이라는 것은 잊지 않았다. 내가 제일 자주 갔고 제일 좋아했던 빵집은 아마도 몇 년 전 없어진 연희동 쿠헨브로트KUCHEN BROT일 것이다. 베를린에 다녀온 후라서 갈 때마다 브로트! 빵! 하고 마음속으로 의기양양하게 외치며 들어갔다. 무척 평범하게 맛있는 동네 빵집이었는데 나는 쿠헨브로트의 잡곡 식빵을 좋아해서 매주 한 개씩 샀다. 음료도 맛있고 분위기도 편안해서 좋아하는 곳이었다. 이곳이 문을 닫았을 때는 정말 슬펐다. 그 이후로는 쿠헨브로트 만큼 좋아지는 곳이 없었고 나는 늘 그곳처럼 유난스럽지 않게 맛있는 빵집에 가고 싶다고 바라지만 정말로 세상에 그런 곳은 잘 없나보다. 쓰면서 또 조금 슬퍼졌고 쓸쓸해졌다.

다시 팥빵 이야기로 돌아가면 하라 료의 어느 소설엔가 팥빵은 동양과 서양이 만난 결과물 중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말하는데 팥빵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로는 조금 부담스럽다는 생각도 들지만 왜인지 그 부분을 읽을 때마다 하라 료는 팥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이전에 찾아본 그의 에세이에서 그가 젊은 시절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 너무 재미있어서 며칠간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우유와 팥빵만을 먹으면서 다 읽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에세이를 읽어서인지 분명히 팥빵을 좋아하는 거야라고 멋대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게 꼭 팥빵을 좋아해서 그랬다기보다 집에서 책을 몰두하며 읽기에 팥빵이 먹기 적당한 음식이었겠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니 내 소설에도 빵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일단 생각나는 것은 이것이다.


나는 짐을 풀고 어묵을 사왔어 부산에서 빵을 사왔어 먹어봐 먹어봐 할 것이다. 그러면 두 사람은 빵을 맛있게 먹는다. 나는 짐을 풀고 옆에 누가 있는 것처럼 속으로 먹어봐 먹어봐 하면서 집 앞 편의점에서 사온 우유와 함께 팥이 든 도넛을 먹었다. 맛있었다. 빵은 맛있고 맛있는 빵은 정말 맛있다.

  • 『미래 산책 연습』, 문학동네, 2021, 196쪽.


다시 읽어보니 이것은 내가 빵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마음과 생각인 것 같다. 빵은 혼자 먹기도 하지만 일단 먹어봐 먹어봐 하고 건네게 되는 것 같고 빵은 맛있는 것 맛있는 빵은 정말 맛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빵에 대해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아주 일부를 담고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할 수 있는 말을 다 한 것 같기도 하다. 먹으면서 먹어봐 하게 되고 여기저기 맛있는 것이 있고 그걸 또 먹어 봐 먹어봐 하게 되는 것이 빵. 이 글을 쓰면 395빵집에서 빵을 살 수 있는 상품권을 준다고 한다. 나는 그것을 친구에게 나눠주며 약간 으스대는 생각을 하는데 최근에 하는 가장 즐거운 생각이 그것 같다. 그냥 별거 아니라는 듯이 그렇지만 맛있고 좋은 것을 주는 느낌으로 가서 빵 먹어봐 알았지? 말하는 나와 빵을 먹는 친구들의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