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희고 고요하다. 창문 너머로 지붕들이 펼쳐져 있고 성모승천교회의 쌍둥이 첨탑이 보인다. 굴뚝에서 흰 김이 솟는다. 구정물 같은 하늘. 까마귀가 세 개의 창을 가로지르며 사라진다. 크라쿠프는 조용하고 평안한 도시다. 손을 대면 흰 가루가 묻어날 것만 같은 녹청색 건물들. 오후의 마지막 빛이 구름 사이로 내리쬐고 있다. 어둠은 눈을 감듯 찾아온다. 금세 눈이 침침해져서 침대 맡에 놓인 램프를 끌어온다. 검은 전선이 팽팽하게 바닥과 책상 사이를 잇고 있다.
램프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사방으로 유리가 튀어 올랐다. 물결 모양으로 주름이 진 전등갓이 깨지자 창백한 알전구가 유리 파편들을 비추며 흰 벽 위로 거대한 잔해의 그림자를 영사했다. 파열의 파동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그 순간에 잠시 붙들려 서 있었다. 처음 혼자 살기 시작했을 무렵, 견딜 수 없는 것들, 가령 바퀴벌레나 귀신이 집안에 있다고 여겨질 때면 무작정 집을 나와 열람실과 카페와 해장국집과 코인노래방을 전전했다. 밤을 샌 뒤 피로한 몸을 침대에 누이면 살뜰히 치우고 닦을 마음이 생겼다. 가방을 집어 들고 방을 나섰다. 바깥에는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비스와강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하루 앞둔 저녁, 한껏 장식된 도시는 마지막 불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박물관의 유일한 관람객이었다. 직원들은 휴일을 앞두고 얼마 남지 않은 근무시간을 지루하게 버텨내는 중이었다. 전시장은 극장처럼 검은 직방형 공간이었고 그 가운데로 나무판자를 덧대어 만든 관람로가 길게 이어졌다.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스산하게 삐걱이는 음향이 들려왔다. 연출가이자 무대미술가였던 타데우쉬 칸토르는 나치가 폴란드를 침공했을 당시 지하 연극 단체를
결성해 활동하였는데 그 까닭인지 그가 만든 무대 오브제들은 대부분 전쟁과 죽음의 모습이다. 그는 철과 나무를 주재료로 일상의 사물들을 이용하여 기묘한 죽음 기계들을 제작했는데 그중 ‘절멸기계(Annigilation Machine)’는 철제 파이프를 이어 붙인 교수대 주위로 접이식 의자를 피라미드처럼 쌓아 만든 작품으로 무대 위에서 이따금 회전하며 무언가를 두드리거나 추락시키는 소리를 냈다고 한다. 그 옆으로는 교수대와 변기를 조합한 나무 조형물이 있었다. 균형 잡힌 두 기둥과 그 사이를 잇는 견고한 평행선, 가운데 드리워진 둥근 밧줄. 나는 교수대의 모양이 조화롭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죽지 않을 가능성까지 완벽히 소거해 버리는 이 잔인한 사물은 죽음보다도 정확하다. 완전하고 견고하며 모든 요소가 목적에 부합하고 그렇기에 불가피하게 아름답다. 무대 소품과 실제 무기가 나란히 놓인다면 그때 우리는 사물의 영혼을 보게 될까? 칸토르는 예술가였지만 또한 한 명의 수공업자로서 무기를 더욱 정교하게 제작하기 위해 어떤 지침들을 따랐을까.
죽음 기계의 주변에는 크고 작은 십자가, 총과 포, 고문 도구, 군복, 관짝, 바퀴 같은 것들이 늘어서 있었다. 창백한 인형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으나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의 표정이 그러하듯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최후의 평화를 응시하는 듯했고 전시장의 한 벽에는 마치 목을 맨 사람들처럼 수십 벌의 등 돌린 옷이 허공에 매달려 있었는데 어디에서 바람이 불어오는지 혹은 고정 줄이 꼬였다 풀리는 것인지 옷 몇 벌이 천천히 회전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으스스한 풍경을 뼈만 남은 말 한 마리가 텅 빈 눈구멍을 통해 응시하고 있었다. 전시실을 나서며 나는 무기물만이 지닌 슬픔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죽음의 형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냄새를 풍기며 썩는 대신 서서히 마모되며 사라지는 죽음.
비스와강변을 따라 걸었다. 강물은 검었고 눈은 희었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을 반사하며 빛을 냈다. 산책로에는 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개가 걷고 있었다. 강변에서 도로로 이어지는 언덕을 오르자 멀리 대관람차가 보였다. 저것을 타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멈춰 서서 대관람차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몇 걸음 뒤 다시 멈춰 서서 대관람차가 정말로 회전하고 있는지, 내 눈이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판단하려 애를 썼다.
도시 한복판 작은 놀이공원에는 I♡KRAKOW 조형물과 커다란 열기구, 자그마한 회전목마가 있었다. 관람차에 오르자 덜거덕 소리와 함께 풍경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T익스프레스가 멈춰 섰다거나 자이로드롭이 오작동했다는 뉴스들이 떠올랐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만약 대관람차가 멈춘다면 높은 가능성으로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는 채 퇴근할 것이고 혹 누군가 알게 된다 해도 상공에 떠 있는 나로서는 지상의 인간이 나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결코 확인하지 못해 초조함에 고통스러울 것이며(나는 갑자기 신의 불안을 이해하게 된다) 만약 운 좋게 누군가 나서 조치를 취한다 해도 전기 기술자들이 모두 긴 휴가에 접어든 탓에 빠르면 12월 28일 늦으면 1월 3일 아침에 얼어붙은 대관람차 안에서 동양인 여자 한 명이 (살거나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지역 신문에 몇 줄 보도되리라. 불안감은 한 바퀴를 다 돌았을 때 더욱 증폭되었는데 그 이유는 어떤 신호도 없이 두 번째 회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좌석을 바꾸어 반대편 경치를 구경했다. 불이 꺼진 호스텔이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어느새 대관람차는 삐걱거리며 상승점을 겨우 넘겼고 땅을 향해 하강하고 있었다. 이렇게 영원히 도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제 정말 집에 가고 싶다고, 깨진 유리 조각도 싹싹 잘 치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땅 위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세 번째 회전이 시작되었다…
강바람을 맞으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노바디 톨드 미. 아이 디든 노우 디스 워크 쓰리 타임즈. 아이 워즈 베리 어프레이드. 비코오즈 노바디 톨드 미. 늙은 남자가 눈꺼풀을 힘겹게 치켜 올리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관리실로 들어갔다. 그의 심드렁한 뒷모습을 보니 갑자기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아졌고 웃음이 났다. 연말의 굽은 등. 시간의 끄트머리가 반원형 곡선을 그리며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입에서 튀어나온 어색한 소리를 몇 번이고 재생해 보았다.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아무도 내게 세 번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무서웠다.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리를 건너자 온통 검었다. 불 꺼진 상점들과 작은 광장을 지났다. 이따금 자동차 몇 대가 지나갔다. 성탄 장식이 없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치의 호들갑에서 멀어지니 춥고 적막한 골목들이 나타났다. 밤의 대기를 향해 따뜻한 빛을 내뿜는 유리창, 무척이나 서글프지만 내가 몹시 사랑하는 그것, 저편의 고향에서 도착한 늙은 사자(使者)의 메시지─당신은 추운 밤거리에서 불 밝힌 집 안을 바라볼 운명으로 태어났소─같은 그 노란 빛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모퉁이를 돌자 멀리 불을 밝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을 향해 걸었다. 폴란드에 머무는 내내 나는 언어와 불화했고 따라서 무엇이든 직접 보고 또 만져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모든 것을 경험하겠다는 조바심은 간판을 읽지 못하는 산책길에 특히 심해졌는데 그 탓에 길을 잃거나 어딘가에 갇히기 일쑤였지만 그럼에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들쑤시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던 까닭은 가지 않기로 선택한 바로 그곳에 신비가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 때문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곳을 떠올리면 너무나 정겨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1
Piekarnia Mojego Taty
피에카르니아 모예고 타틔
빵집 아버지의 나의
내 아버지의 빵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소한 빵의 냄새와 따뜻한 공기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반질거리는 붉은색 나무를 쌓아 덧댄 매장은 비좁지만 아늑했고 벽에는 역대 제빵사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으며 커다란 주방 한가운데에는 1914년산 영국식 세라믹 오븐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12년 한 유대인이 지금의 자리에 문을 연 뒤 나치가 침략하면서 폴란드인에게 인수되었고 그 이후 현재까지 가업으로 대를 이어오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이 빵집에는 이름이 없는 셈이었다. 빵집의 이름은 말 그대로 우리 아빠 빵집. 나의 아버지가 빵을 굽는 곳이자 이다음에 커서 내가 빵을 구울 곳, 남을 살리고 가족을 먹이는 방법을 자연스레 터득하는 장소인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매일 새벽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문을 연다는 것이었는데 이 부지런한 빵집에 대하여 한 구글맵 사용자는 이런 리뷰를 남겼다. “그것은 말 그대로 하늘(빵집)에서 떨어졌고, 맛있는 빵, 젖었지만 충만한, 그것은 주님이자 구원자의 빛처럼 우리에게 내려왔습니다!!! 빵의 안식처, 어둡고 위험한 밤을 헤매는 이들의 안식처! 선함의 보물창고!!!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구글맵에는 술에 취해 길을 가다가 난데없이 나타난 빵집에서 쓰리고 주린 배를 채웠다는 후일담이 간간이 기록되어 있다. 아홉 시만 지나도 인적이 끊기는 도시에서 이들은 왜 이런 영업시간을 고수하는 것일까.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은 가장 일찍 일어나는 사람과 가장 늦게 잠드는 사람 모두에게 공평해야 한다는 어떤 신념에서 비롯된 것일까.
빵을 사 들고 거리로 나섰다. 폴란드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주로 먹는 빵이라고 했다. 포도송이처럼 올록볼록 부풀어 오른 커다란 마름모 모양의 빵이었다. 껍질에는 윤기가 흘렀고 양귀비씨가 뿌려져 있었다. ‘하우카(Chałka)’라는 이름이 붙은 이 빵은 긴 반죽을 땋아 모양을 낸 뒤 구워내는데 마을마다 집집마다 기념일마다 그 짜임을 달리한다고 했다. 가장 기본적인 패턴은 소녀들의 땋음 머리와 같겠으나 부엌에서 부엌으로 전해진 노하우에 따르면 여섯 가닥으로도 아홉 가닥으로도 만들 수가 있었다. 나는 앞치마에 밀가루를 묻힌 강인하고 덩치 큰 여자들이 딸과 손녀, 이웃 여자들에게 빵 땋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을 상상했다. 머리카락 대신 반죽을 땋는 너그러운 손길을. 그들은 세 가닥이라고 말해주었을 것이고 그래서 나머지 사람들은 무섭지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바 하우카는 유대교 전통 빵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거리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된다. 그곳은 유대인 마을이었다.
하루 종일 굶주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빵을 뜯어 먹었다. 짭짤하고 순수한 빵의 맛. 양귀비씨에서는 흑임자 비슷한 맛이 났고 얇고 바삭한 껍질 속에는 촉촉하고 향긋한 빵의 흰 가닥들이 부드럽게 엉겨 있었다. 아 맛있어! 아 맛있다! 중얼거리며 외치며 몸통만 한 빵을 품에 안고 마치 나의 살점을 꺼내 도로 삼키는 모양으로 쉴 새 없이 뜯어 먹었다. 그러자 오래지 않아 몸이 따뜻해지며 피가 돌았고 세상의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길은 점차 밝아졌고 빙판은 녹아 있었고 사람들이 선물 가게를 들락거렸고 말들은 우아하게 발을 굴렀다. 나는 환하게 불이 켜진 도시의 중심으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영원과 하루를 가로질렀다. 나의 작은 방 깨어진 유리 조각을 주워 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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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비를 기다리고 있다. 낡은 헌책방에서 무명작가의 놀랍도록 아름다운 글을 발견한다거나 이름 없는 빵집에서 갓 구운 빵을 베어 문다거나 이정표 없는 길의 모퉁이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발견하는 일 같은 소박하고 기적적인 사건을. 이런 평범한 만남을 신비라고 말하는 까닭은 무언가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그것을 진실로 기다려왔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신비는 무명의 얼굴로 나타난다. 내 안 깊은 곳에서 이미 그것을 알고 있어 구태여 이름 지어 붙일 필요가 없다.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영원의 건축』에서 무명을 내적인 모순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이며 삼라만상 내부에 깊이 자리한 특성이라고 설명한다. 건축서라기보다는 방대한 아포리즘에 가까워 보이는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다. “한 건물이나 마을의 생명력은 영원의 방식을 얼마나 충실히 따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영원의 방식은 집과 건물, 마을과 도시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정신까지 아우르는 가장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존재 방식이다. 문장은 이어진다. “영원의 방식을 찾으려면 먼저 무명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어떤 말로도, ‘생명력’도 ‘완전함’도 ‘편안함’도 ‘자유로움’도 ‘무아(無我)’도 ‘영원함’도 무명의 특성을 정확하게 칭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명의 특성을 감지할 수 있다. 가령 수도원이나 고성, 사원이나 소박한 우물에서. 도시의 상점, 시장의 좌판, 낡은 의자와 옷장에서. 그것은 특별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평범해서 우리 삶이 흘러가고 있음을 깨우쳐 주며 그렇기에 약간은 서글픈 특성이다.” 나는 이름 없음에 관하여『영원의 건축』만큼 겸허하고 아름답게 써 내려간 글을 본 적이 없다. 도서관의 사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방은 늘 2층에 있었노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곰곰 생각했다. 신비와 신비를 만나기 전의 서성임, 그사이에 놓인 통로적 시공간을 떠올려 보았다. 이 길이 끝나면 이 복도를 지나면 이 계단을 오르면 저기 끝이 바짝 다가오기 전 또 다른 커브길이 있고 그곳은 지도나 이정표 그리고 나의 시야가 충분히 닿지 못하는 곳이므로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알 길이 없다. 만약 당신이 산책자 혹은 모험가라면 그곳에 가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무언가를 막연하게 기다리거나 순전히 미학을 위하여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호기심으로 고개가 튀어나오고 갖가지 상상으로 눈앞이 아득해질 것이다. 그렇게 겨우 다다른 곳에는 높은 확률로 켜켜이 쌓인 상자나 시든 식물이 담긴 화분, 먼지 쌓인 자전거, ‘폐업’이라 쓰인 종이, 굳게 잠긴 현관문, 나프탈렌 냄새가 나는 공용 화장실이 있을 테지만 어쩌면 아주 적은 확률로 흑연처럼 반짝이는 무명의 한 점을 포착할 수도 있다. 비록 잔해와 폐품 속일지라도. 우리가 사랑하는 장소는 모퉁이를 돌아야 나타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