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르베 식으로 말하자면, 빵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구멍이다. 양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구멍인 것처럼. 그리고 빵과 빵집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레이먼드 카버가 쓴 것이고, 카버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언제나 구멍이다. 구멍은 카버가 말하지 않고 비워 둔 여백에 관한 은유이다. 소설 속 존재들이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그들의 마음에 무언가가 뚫려 있다는 은유이기도 하다.
카버 또한 구멍 난 인간이었다. 카버는 알코올중독자였다. 카버의 소설 속 인물들이 절망감에 빠져 술을 마시듯, 카버 또한 견뎌낼 수 없는 것을 견뎌내기 위해 술을 마셨다. 계속 이렇게 술을 마신다면, 뇌가 돌이킬 수 없이 손상될 거라고 의사가 경고할 때까지. 카버는 반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알코올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4번이나 입원했다. 술을 끊으려고 노력하면서 계속 글을 썼다. 그리고 금주 결심 이후 쓴 소설 중 하나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빵집에서 시작하고 빵집에서 끝나는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 때문만이 아니라 나는 이 이야기가 늘 빵 같다고 생각해 왔다. 파삭함 속에 미약한 온기가 있기 때문에. 파삭하고 건조해 보이지만, 뜯어 보면 작은 온기가 있어서 가만히 쥐고 있게 된다. 반사적으로 손을 떼 버릴 정도로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지도 않다. 금주 이전에 카버가 쓴 소설 역시 파삭하지만, 그건 좀 서늘하고… 곱씹기도 전에 목이 막힌다. 단순하고 짤막한 문장,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전개. 불길한 조짐으로 가득 차 옴짝달싹할 수 없는 삶. 그건 카버의 스타일로 유명하지만, 고든 리시의 편집 덕이기도 했을 것이다. 고든 리시는 안목이 뛰어난, 영향력이 큰 편집자였다. 리시는 카버의 글 상당수를 덜어내고, 적극적으로 수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든 리시의 편집본이 출간된 이후, 카버의 원본이 따로 출간되기도 했을 정도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역시 그런 글 중 하나에 속하고, 이것의 편집본이 「목욕」이다. (「목욕」이 2년 앞서 발표되었다.)
「목욕」의 줄거리는 이렇다.
아이의 생일을 맞아 어머니는 빵집에 미리 케이크를 주문한다. 우주선과 행성이 그려진 케이크에 아이의 이름 ‘스코티’를 초록색으로 쓸 것이다. 하지만 생일 당일, 아이는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는다. 부모는 병실에서 아이가 의식을 되찾기를 기다린다. 아이는 쉽게 깨어날 것 같지 않고, 의사도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지 못한다. 부모는 목욕이라도 하기 위해 번갈아 집에 다녀오기로 한다. 처음엔 아버지가 집에 들른다. 전화가 온다. “가져가지 않은 케이크가 있어서요.” 아버지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 버린다. 그다음엔 어머니가 집에 다녀오려고 한다. 이때 병원 대기실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인, 불안하고 두려움에 빠진 어느 가족을 마주친다. 그들은 그녀를 병원 관계자로 오해하고 수술실에 들어간 그들의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절박하게 묻는다. 그녀는 그에 대한 대답 대신 자기의 아이는 차에 치였다고 말하고, 그 가족들이 알려준 길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을 떠난다. 어머니가 집에 도착하자 전화벨이 울린다. “스코티 때문인가요?” 어머니는 두려움에 빠져, 병원에서 마주쳤던 가족들처럼 묻는다.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요. 스코티와 관련된 일로 전화드렸습니다.”
병실에 누워 있는 아이를 두고 잠시 집에 들른 부모에게 이 전화는 병원에서 걸려 온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게 실은 미리 주문해 둔 생일 케이크에 관한 전화인데도. 「목욕」은 여기서 끝난다. 어긋나버린 약속과 예기치 않은 사고, 거기에서 비롯된 오해와 상실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이야기 속 인물들은 마주치는가 싶다가 서로를 지나치며, 연결될 듯하지만 연결되지 않는다. 어머니는 전화가 병원에서 걸려 온 것이라 믿고 있고, 빵집 주인은 이 상황을 모른다. 우리는 병실에 있는 아이가 의식을 되찾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어머니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이어질 다음 말을 기다린다.
나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먼저 읽고「목욕」을 나중에 읽었으며, 당시엔 「목욕」이 편집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카버가 「목욕」을 먼저 쓴 뒤, 시간이 흐른 뒤에 이야기를 이어 나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제목을 붙인 줄 알았다. 최근 카버의 전기, 『레이먼드 카버 : 어느 작가의 생』을 읽고 나서야 두 소설 도착지가 다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목욕」은 편집자였던 리시가 특히 많이 덜어낸 소설이었다. 리시는 카버가 붙인 제목, “A small, good thing”을 “The bath”로 바꾸고, 15페이지였던 원본을 12페이지로 줄였다.
편집본을 읽은 카버는 충격에 휩싸여 리시에게 편지를 쓴다. 리시가 삭제한 3페이지보다 더 긴 4페이지짜리 편지를. 전기에는 이 편지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인용되어 있는데, ‘제발’이라는 단어가 3번이나 등장한다. 카버는 리시의 문학적 안목에 존경을 표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고, 그럼에도 특히 세 작품(그중 하나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다)의 편집은 받아들일 수 없음을 설명하려고 애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앞부분은 「목욕」과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목욕」이 끝난 부분에서 이야기는 더 이어진다. 어머니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이어질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러나 전화는 오해를 남긴 채로 끊어진다. 어머니는 두려움에 떨며 병원으로 돌아가고, 간호사를 찾아가 대기실에 있던 가족들의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묻는다. 이야기의 작은 도약. 하지만 곧바로 추락으로 이어진다. 그 가족들의 아이는 사망했다. 부부의 아이인 스코티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는다. 아이를 잃은 부모는 집에 돌아온다.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스코티에 대해서는 잊어버렸냐고 묻는 전화. 어머니는 전화를 건 곳이 어딘지 깨닫는다. 다시 한번 도약하는 이야기. 분노가 빵집으로 향한다. 아버지에게 사건의 전말을 알린다. 부모는 한밤중에 차를 끌고 빵집으로 향한다. 영업시간이 끝난 빵집의 문을 두드린다. 아이가 죽었다고 말한다. 빵집 주인이 상황을 알게 된다. 서툴게 사과를 건넨다. 그리고 이때 그가 하는 말.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빵집 주인은 부부에게 의자를 내어 주고 갓 구운 빵을 가져온다. 자기 삶을 이야기하고, 부부는 빵을 먹으면서 허기를 채운다. 빵집 주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빵집 주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꽃장수가 아니라 좋았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만드는 게 더 좋았다. 언제라도 빵냄새는 꽃향기보다 더 좋았다.
“이 냄새를 맡아보시오.” 검은 빵 덩어리를 잘라내면서 빵집 주인이 말했다. “퍽퍽한 빵이지만, 맛깔난다오.”
그들은 빵냄새를 맡았고, 그는 맛보라고 권했다. 당밀과 거칠게 빻은 곡식 맛이 났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데, 그 빛이 마치 햇빛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 『대성당』(문학동네, 2007), 128쪽.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밥 먹었어? 뭐 먹었어?”라는 질문이 의아했던 적 있다. 그게 왜 궁금하지? 그걸 왜 물어보는거야? 무슨 의미야? 친구는 그런 걸 스몰토크라고 하는 거라고 알려줬다. 스몰토크는 궁금하지 않은데도 건네는 무의미한 질문을 뜻하는 거냐고 내가 다시 묻자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토크’잖아, 너는 뭐라고 대답했는데? 뭘 먹었는지 알려줬지. 그리고? 그게 다인데. 너도 물어봐야지, 그래야 대화가 되지. 뭐라고 물어봐? 상대방은 식사를 했는지, 먹었다면 뭘 먹었는지. 난 그게 안 궁금한데?… 하지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마지막 장면을 읽은 뒤로, 인공적인 불빛을 온기 머금은 햇빛으로 느껴지게 만든 게 뭘까 생각하다가, 내가 조절할 수 없는 허기와 그럴 때 찾아오던 공허함과 무언가를 먹고 나면 조금씩 따뜻해지던 몸을, 매일같이 하기 때문에 무의해 보이는 먹고사는 일의 고됨과 성가심과 그럼에도 그걸 해야만 이어지는 삶을 생각하고 나도 누군가 내 앞에서 울거나,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면 “뭐 좀 먹었나요?” 더듬더듬 묻게 되었다.
카버의 다른 단편의 원본과 리시의 편집본을 모두 읽어 본 것은 아니고, 사실 그것들 중 어떤 버전이 더 나은지 하나하나 비교할 정도까지의 관심이 있지도 않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만큼은 카버의 버전이 좋다. 카버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결말을 포기하지 않으려 애썼던(전기에서는 커버가 리시에게 보낸 편지를 “사랑스러우면서 동시에 끔찍한 퍼포먼스”라고 칭한다) 이유를 알 것 같다. 왜? 함께 카버를 읽고 있던 친구가 물었다. 희망이 있잖아. 도대체 희망이 뭔데? 나도 모른다. 하지만, 카버의 이야기에서만큼은… 아이가 사고를 당해 병실에 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끝나기보다… 아이가 죽고 절망에 빠지지만,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 무어라 이름 붙이기 어려운 구멍을 덮어 버리기 위해 술을 마셨을 카버가 술을 끊기로 결심하고, 구멍을 응시하고…
서로 다른 삶을 경험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뚫린 구멍을 통로 삼아 미약하게나마 연결되는 것. 아이를 잃은 부부와 아이 없이 살아온 빵집 주인이 한곳에서 빵과 이야기를 나누며 허기를 채우는 것. 「목욕」에서의 대화는 자꾸만 어긋나고, 말은 힘을 잃고,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지만, 이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이 불확실성이 현실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처럼 우리는 언젠가는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거대한 구멍을 얻을지도 모르지만, 구멍은 통로가 되어 우리를 예상치 못한 만남으로 이끌거라고. 그렇게 다시 하루를 시작할 힘을 얻기도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