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빵을 만들다 보면 사실 대부분의 과정은 별생각 없이 관성대로 처리하게 된다. 레시피를 하나하나 체크하지 않아도 이미 손은 정량을 계량하고 있고, 타이머를 맞추어두지 않아도 몸의 시계가 반죽 시간을, 발효 시간을 체크한다. 큰 리스크 때문에 온전히 신뢰하는 도구는 아니지만 뜻하지 않게 발생하는 (타이머 건전지가 스르륵 빠져서 울리지 않는다든가, 손님과 대화하 다가 알람을 듣지 못한다든가 하는) 위기의 순간, 훈련된 몸의 감각은 꽤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감각을, 12년 제빵사의 ‘짬바’ 를 내세우지 않고 필히 겸손해야 할 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오븐 앞에서 기다리는 반죽을 마주할 때이다. 무발효 빵, 무반죽 빵은 있어도 굽지 않는, 익히지 않은 빵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오븐이든, 화덕이든, 프라이팬이든, 전자레인지든, 끓는 물이든, 기름이든 모든 반죽은 불이 가진 에너지, 즉 열을 만나야지만 빵으로 태어날 수 있다.
밀가루가 빵이 되기 위해서는 몇 번의 변태 과정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밀가루를 비롯한 가루 재료와 액체 재료들이 운동에너 지를 통해 하나의 물질이 되는 단계. 두 번째는 적당한 시간과 온도가 주어지면 활동하는 반죽 속 효모와 효소를 통해 (단순 결 합구조가 아닌) 유기적이고 향과 맛의 초석을 다진 반죽으로 성장하는 단계. 그리고 마지막은 그렇게 성장한 반죽이 열에너지 를 통해 인간이 안전하게 소화시킬 수 있고, 풍미를 즐길 수 있으며 수일간 보관 가능한 빵으로 탄생하는 단계이다. 이 과정 중 제일 큰 변화는 마지막 과정에서 일어나는데 그건 마치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만큼이나 극적이다. 대부분 우리가 떠올리는 빵의 특징은 이때 결정된다.
살짝 반짝이는 황금색 껍질에 봉긋하게 부풀어 올라 적당한 탄력과 견고함을 가지고 있고, 그 속엔 보드랍고 촉촉하며 씹으면 슬며시 단 맛이 차오르는 결을 가진, 먹을 수 있는 물체.
열이 가해진 단백질은 응고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수분을 뱉어내고, 그 수분은 전분의 팽윤과 호화 작용을 돕는다. 점점 높 아지는 열기에 반죽 속 효소와 효모는 활동을 멈춘다. 어딘가에 결합되지 못한 수분은 증발하고 껍질은 단단해진다. 분해된 단 백질과 당이 일으키는 마이야르 반응과 캐러멜화된 당은 빵에 맛과 향, 그리고 색을 입힌다.
이 모든 변화의 시작 앞에 아직 모든 것이 살아있고, 성장 중이며, 동시에 연약하기 그지없는 반죽과 마주한 제빵사는 마치 아 이를 받는 산파가 된 마냥 경건하다. 엄마와 아기가 새로운 세계를 만날 준비가 되었는지,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 주변 환경 은 어떻게 맞춰주어야 하는지 유심히 살피고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 싶을 때 반죽을 뜨거운 열 속에 과감히 내던 진다. 반죽은 그 속에서 빵이 된다. 불 속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해 제빵사가 할 수 있는 간섭이란 없다. 홀로 선 반죽이 자신의 몸으로 “오늘은 성급했던 듯…” “좀 늦었는데?” “스팀!스팀!스팀!” “아무리 노력해도 힘이 안 납니다.” “저한테 무슨 일을 하신 거죠?”라고 외쳐도, 설사 그 열기 속에 손을 넣을 수 있다 해도, 제빵사는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모든 것은 빵으로 변화하기 이전 반죽이 품고 있던 도면대로 진행된다. 불은 그저 그 설계가 드러날 수 있게 해줄 뿐이다. 모든 것은 반죽 안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새로운 것은 없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반죽은 새롭고, 유일하다. 나는 매일 하나의 세계를 지었다가 떠나보낸다. 좀 더 마음에 드는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마 지막 기회는 오븐 앞에 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지, 이미 늦었으니 오븐의 온도를 바꾸어주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 깊이의 칼집과 스팀이 오늘의 반죽에게 필요할지. 이 반죽의 힘은 어느 정도인지 유심히 살피고, 느끼고 결정한다. 그렇다 한들 나의 감각에는 언제나 오류의 영역이 있고, 생명력에 작용하는 변수는 너무나도 많다. 반죽은 살아있다. 내가 한 반죽이어도 무엇을 품고 있는지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같은 반죽 시간, 발효 시간이 똑같은 글루텐/전분 구조와 효모/효소 활동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불 앞에서 기도할 수밖에 없다. 비록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결국 나는 태어날 빵에 대 해, 다가올 세계에 대해 온전히 알 수가 없기에.
어떤 날은 모든 것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져 아주 마음에 드는 세계를 만난다. 어떤 날은 무엇을 잘못한 건지도 모른 채 도저 히 받아들이기 힘든 세계를 만난다. 그러나 그 모든 날 모두, 이미 반죽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빵이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