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1977년, 바깥 태양계를 탐사하기 위해 쏘아 올린 보이저 탐사선에는 소위 ‘골든 레코드’라 불리는 직경 12인치 크기의 축음기 음반이 실렸다. 이 음반에는 55개 언어의 인사말, ‘지구의 소리’(The Sounds of Earth), 엄선된 동서양의 음악, 앤 드루얀의 뇌파, 그리고 116개의 지구에 관한 이미지가 기록되어 있었다. 골든 레코드를 담은 금빛 케이스에는 음반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알려주는 다이어그램, 일종의 스코어를 새겨 넣었다.
박민하의 『eek』는 이 골든 레코드라는 기획을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재검토하는 프로젝트이다. 지구를 대표하기 위한 골든 레코드의 방법은 재현과 선별(배제)이다. 실재를 생성하는 진동을 전하기보다는 리얼리티의 구축을 위한 장치를 작동시키는 일이었다. 때문에 골든 레코드는 외계 문명, 혹은 사물을 향한 우정의 편지가 아니라 인간 중심적이고 서구 중심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축소하는 프레이밍이자 우주 개척의 판타지를 강화하는 드라마였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지구의 소리”는 우주를 배회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 소리의 수신자는 지구에 발붙이고 있는 인간이다.
『eek』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한,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지구’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질문하고 대답해보는 음향적 사고실험이다. 류한길과 박민하는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설정하고 이를 풀어나가며 한 편씩의 음악을 내놓았다. 류한길은 55개 언어의 인사말이 나열된 골든 레코드의 한 파트
인간의 언어를 가지지 않은 다른 존재에게 소리를 전하는 것은 오차와 시차를 감수하는 일이다. 혹은, 오차와 시차를 가진 서사만이 실재를 추측하는 진동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eek』의 전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언어를 가지지 않은 다른 이들에게 보낼 편지라는 조건 없이 그 서사는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eek』는 소리를 어딘가로 보내 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