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뉘연, 로 위에

악보(Text Score) 만들기: 읽기, 쓰기, 다시 쓰기, 다시 읽기 [마침]

2024년 10월 5일 ~ 2024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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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읽고, 쓰고, 다시 쓰고, 다시 읽으며 글을 받아들인다.


수업 계획서

글을 통과하는 사람들.

내뱉어지는 말들은 여러 갈래로 읽힌다.
내가 말하는 건 절대로 내가 말하는 게 아닌 다른 무엇이다.

이 일을 조용히 눈으로 좇고 있는 사람은

마치 문장 한 토막을 잃어버린 듯이 거기 가만히 있어 그리고
정말 문장 한 토막이 없고.
정말 많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건 질문이 아니었고 답할 건 없었다.

제가 아무렇게나 지어낸 거예요.
나는 그것을 하나의 자랑이라 여겼다.

그 이야기들도 항상 진실은 아니지만 가끔 진실이기도 하다.
그것은 느낌에 가깝다.
그 말은 그것이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이해된다.

잃어버린 것과 발견한 것
잃어버리고 또 발견한 것들의 침묵
저자도 없이, 주체도 없이, 객체도 없이.
무언의.

대체로 거의 추상적인 형태들.
나무줄기를 타고 흘러내릴 것이다.

아름다운 우물에서 아름다움을
길어낼 때의 죄책감

구멍이 숭숭 난
나무의 몸통

구멍 주위를 맴도는

밤에 숲을 생각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무줄기로, 사람들은 그것의 존재를 사방으로 더듬으면서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이 온다.

  • 김뉘연(2024), 로 위에(2024), 로베르트 발저/안미현(1924–1933/2023), 샹탈 아케르만/이혜인(1998/2024),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민승남(1973/2023)


1회

읽기/쓰기/악보 만들기(김뉘연, 로 위에)
읽기/쓰기/다시 쓰기/다시 읽기(김뉘연, 로 위에, 참여자)

2회

읽기/쓰기/다시 쓰기/다시 읽기/악보 만들기(김뉘연, 로 위에, 참여자)

3회

〈namsan〉 공연(김뉘연, 로 위에, 참여자)


일정

2024년 10월 5일, 12일 (토요일, 18:00–20:00), 10월 19일 (토요일, 14:00–16:00) [3회]

장소

10월 5일, 12일: 나선도서관
10월 19일: 야외 연주 (우천시 일자 변경, 장소 추후 공지)

정원

4명

수업료

12만 원 (분납 가능)

참여자 준비물

구글 독스(Google Docs)에 접속할 수 있는 전자 기기(노트북, 태블릿 PC, 휴대전화 등)

참고

선착순 접수 마감


진행

김뉘연

언어가 통제할 수 없이 움직이고 변형되며 때로는 압도적인 위협이었다가 때로는 아름다웠다가 때로는 비열했다가 때로는 질서를 갖추는 무언가라면, 김뉘연의 일은 대개 이 언어의 움직임과 변형에 함께 휩쓸리는 일이다. 그 운동 속에서 어떤 공간을 발견하면, 김뉘연의 쓰기는 그 공간과 그곳의 언어 운동에 관여하고 또 그것을 거울처럼 비추기 시작한다. 〈문학적으로 걷기〉 〈수사학: 장식과 여담〉 〈마침〉 《방》 등의 공연과 전시에서 전용완과 함께 문서를 발표했고, 『모눈 지우개』, 『부분』, 『문서 없는 제목』, 『제3작품집』 등을 썼다.

로 위에

로 위에의 문서 작업은 대개 누군가의 텍스트를 다시 쓰고 밑줄치고 고쳐 쓰는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변형 그 자체나 변형된 의미가 아니라 변형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그리고 텍스트를 다시 쓰고 고쳐 쓰는 과정은 텍스트 내부의 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어떤 순간, 존재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을 때 이루어진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이미 있는 존재들을 세심히 그리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는 지나가듯 자기의 일은 제대로 된 결과물 없이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라 말한 적이 있다. 2014년부터 작곡작품 연주회 〈namsan〉을 진행하고 있다.


수업에 관한 Q&A

이 수업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읽나요?

나선도서관의 장서들을 읽습니다. 읽고, 옮겨 쓰고, 만들어 쓰기도 하며, 만날 수 없는 이들의 글과 만날 수 있는 이들의 글을 함께 읽어 갑니다.

쓰고 다시 쓰는 과정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일이 작곡일까요?

읽고 쓰고 다시 쓰고 다시 읽는 과정에 처해 봅니다. 글을 해체하고 조합하고 구성하며 글의 뒤섞임을 경험합니다. 글을 새롭게 받아들입니다. 이 일은 작곡이거나, 번역이거나, 창작이거나, 연습일 수 있습니다.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습니다. 그래도 연주/공연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산으로 가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는 왜 산으로 가나요?

산으로 가면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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