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사라지고, 숨어 있고, 형태 없는 진동을 뒤좇으며 발견한 것으로부터 부풀어 오르는 이야기를 글로 써 오랫동안 천천히 주고 받는다.
수업 계획서
터무니없는 이야기
비평이 측정(measurement)으로 시작한다고 말해보면 어떨까? 이쪽에서 저쪽으로 휙 지나가 멀어지는 것의 속도, 오르내리는 출렁임의 깊이,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의 크기, 피부를 압박하는 압력, 멀어졌다 되돌아오는 것의 주기, 엄습하는 으스스함의 온도, 혹은… 측정은 움직이고 사라지는 것, 잠재해 있고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 것, 그러나 힘을 발휘하고 힘이 작동하는 장을 가진 것을 사변하기 위한 조사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기술적 측량과 형이상학 모두를 비껴가는 지식의 길이다.
측정의 대상은 음향이다. 음향은 진동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다. 하지만 용어의 쓰임은 충분히 포괄적이지 못한데,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이미 우리에게 드러내어진 것 혹은 우리가 형태화 할 수 있거나 인지할 수 있는 진동만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녹음된 소리. 여러 양태 중 특정한 무언가가 선택되고 가시화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형태화 된다는 것은 모종의 힘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이 용어는 이미 정치적이다. 그 밖의 진동은 소문 혹은 불길한 것으로 여겨지거나, 신비화 되거나, 심하게는 존재 자체가 부정된다. 이 차이는 결정적으로 고고학적인 문제다. 전자는 역사적으로 인간과 관여된 관계의 네트워크를 형성해온 반면 후자는 그렇지 못하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차원의 관계적 실재는 역동적이나 충분히 측정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추측컨대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네트워크 속에서 활성화되어 있다. 바로 그러한 진동을 측정하기를 시도했던 가장 탁월한 기술자들이 문학가들이다. 어떻게? 터무니없이.
글쓰기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진동을 측정한다. 이것 또한 엄밀히 말하자면, 진동이 남긴 흔적, 단서, 징후 혹은 에코랄리아를 통해 진동을 측정하기를 시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에 다가가고자 할 때, 진동은 언제나 이미 사라져 있거나 다른 무언가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인간의 감각과 이성적 사고로는 도저히 해소할 수 없는 움직임과 그 변형을 측정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도입된 능력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젠 설 자리를 잃어가는… 만약 우리가 종종 진동을 그 자체로 포착했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사소한 착각일 확률이 큰데, 그것은 지식이 산출한 진동화 된 사물, 형태화 된 진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언제나 진동의 껍데기 같은 것이다.
측정의 다른 문학적 표현은 애도다. 그것은 남은 것들을 이질적인 것들에 얽음으로써 사라진 것의 세계-관계를 체계적으로 기술하여 관계-세계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장소 없는 사건을 기술한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터무니 없는 이야기이지만, 이것은 사실 해석하기의 다른 형식일 뿐이다. 이 해석은 대상의 본질과 실체에 다다르는 일이 아니라 대상을 생성하는 생각하기의 역량이다. 다만 이 일을 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것은 모르는 것, 상상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한 뒤 이어지는 지난한 막막함과 곤혹스러움이다. 여기서 시작은 언제나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이다. 조개껍질에 새겨진 나선형의 문양을 골똘히 바라봤던 오래 전의 한 문학가처럼.
음향 고고학은 기원과 원형을 추적하고 회복하는 일, 과거를 침범하는 일, 결론에 도달하는 것과는 큰 관련이 없다. 그보다는 끊임없는 사라짐(즉 끊임없는 움직임)을 뒤좇으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통해 측정하고, 그것이 얽힌 근원적인 관계의 장을 설계함으로써 잠재적이었던 진동들이 출현할 수 있는 바탕을 상상해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은 들리는 소리를 듣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이것은 꿈을 꾸는 일이지만, 눈을 감지 않고 읽기로써 꾸는 꿈이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영구히 반복되고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형태들 사이 어딘가에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이것은 비평의 일, 프로젝트다.

일정
2024년 11월~2025년 4월
장소
없음.
- 6개월간 10여 번 서신을 주고 받습니다.
정원
1~3명
수업료
48만 원 (분납 가능)
신청 기한
2024년 11월 10일 자정까지
신청자 제출 자료
글을 쓰는 시점에 더는 남아 있지 않은, 사라진 것에 관한 에세이 (2,000자 내외)
- 제출 자료를 살펴 참여자를 선정하며, 선정 결과는 11월 12일까지 개별적으로 알려드립니다.
진행
이한범
사물과 현상에는 이해하기 어렵고 곤란하지만 매혹적이고 또 문제적인 상황과 순간이 반드시 있다. 그 순간은 누군가에게는 흘러가 희미해지는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져 마주해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개 어려움은 복잡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순간이 앎의 한계(marginal) 근처에 출몰한다는 것에서 연유하는데, 이한범은 그 영역을 두리번거리며 남은 여진 속에서 문제를 구하고 다시금 대상으로 돌아가 대상을 통해 문제를 다루는 일을 작업으로 삼는다. 그는 이것을 비평으로 이해하며, 주로 예술 작품이라는 사물과 예술이라는 현상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지만 비평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그것으로부터 멀리 멀어졌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수업에 관한 Q&A
음향 고고학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주세요.
음향은 ‘매질을 통해 진동이 퍼져나가는 역학적 파동’으로 정의됩니다. 그리고 파동으로 인한 현상들에 우리는 다양한 이름을 붙입니다. 예컨대 인간의 청감각으로 수용 가능한 진동 범위의 파동이 일으키는 현상을 우리는 ‘소리’라고 표현하죠. 무엇이 되었든, 진동은 그 자체로는 움직이는 운동이고, 따라서 생성과 동시에 사라지는 무언가입니다. 다만 그것은 그것이 관여한 사물, 장소 등을 변형하고 가끔 이해 가능한 모습으로 출현하기도 하기에, 우리는 그러한 변형과 출현을 세심히 관찰하고 기억함으로써 그 존재의 양태를 추측해 볼 수는 있습니다. 이처럼 사라진 진동을 추적하고 진동의 장을 구조적으로 탐색하는 것이 음향 고고학의 기본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진동을 선별하고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진동들 사이의 역학 자체를 사고하고 몽타주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음향 고고학은 어쩌면 압도적인 진동들 사이에서 다른 진동을 출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하는 작업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음향을 다루는 일이라면,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가 필요한가요?
특별한 장비나 기술은 필요 없습니다. 다만 어떤 힘들을 발휘할 필요는 있을 텐데요, 세심한 관찰력, 평범하고 사소한 것을 의미심장하게 다루는 상상력, 사고를 전개하는 글쓰기를 위한 지구력. 이것은 음향 고고학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과정을 통해서 길러질 힘이기도 할 것입니다.
왜 편지를 쓰나요?
우리에겐 느린 시간, 함께 생각할 사람들, 이야기가 여정을 떠나고 또 되돌아올 수 있는 너른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수업을 듣고 나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당신이 달라질 가능성은 아주 희박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보는 세계는 거의 전적으로 뒤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요?